티스토리 뷰

반응형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04부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5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04부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5

https://www.youtube.com/watch?v=JOjoMczBTyQ

 

 

재생시간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04부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5

Sw********:
5:15 캬 식사를 얻어먹고 싶으면 식탁보라도 펴라..

뭐라도 해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매우 교훈적이네요

김재*:
12:52 기자님 표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In***************:

3:41 기자님 목소리 발언 무시됨... 너무해


Br*******:

#27:09 받들겠습니다!!! 기자님 정말!


마*:
12:52에 기자님의 저 한심하다는 표정 ㅋㅋㅋ

Ta**********:

36:40 내부 안정용 거짓말. 외침도 그렇고


끄레******:
10:31 쓰키야마 도노? 요도도노라고 할 때 -도노인가요? 쓰키야마는 달뫼[月山]라는 뜻인가?

Ta**********:
12:27 유스타니아누스 대제와 벨리사리우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되는거지. 나한테 반기를 들거냐 아니면 내 말을 들을거냐 선택해라 이거...

에스**:

9:52 10:20 13:07 14:04 33:05 항우와 비슷한거 같아도 항우와 완전하게 다른 노부나가 27:38 화약이야기 4:22 17:25 22:19 34:31 38:23 42:22


인*:
5:42

 

 

인기순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04부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5

강석*: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매주 감사드립니다 ㅠ.ㅠ

언*:

너무 잘 보고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파이팅!


Hi**********:
예고에 나오는 무사들이 등에 달고다니는 풍선같은 것을 호로라고 부릅니다.

ほろ(호로) :
母衣, 保侶, 幌라고도 표기한다.
『三代實錄』, 『扶桑略記』 등에 保侶라는 말이 있고, 이것이 후세에 사용되는 母衣와 같은 것인지 어떤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등에 걸치는 망토모양의 물건이다.
伊勢貞丈은 이것에 대해 '앞에 달고 화살을 피하는 도구'라 했고, 『武家名目抄』에서도 '옛적의 母衣라는 것은 갑옷의 보조도구
로서 화살과 돌을 막는 도구이다'라고 했고, 『武用辯略』에서도 그 유래에 대해 억지로 가져다 붙이고 있지만, 결국 방한방습의
도구로 군사적 풍모를 부풀리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상단을 어깨 위에서 묶고, 아래쪽을 허리에 끼워넣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리면 바람에 부풀어올라 돛처럼 되는데, 후세에는 아예
'호로구시(母衣串)'라는 틀을 사용하여 부풀린 형태가 되어, 알려진 무사나 전령 등이 표시로서 애용했다.
때문에 호로무사는 명예였고, 호로무사를 무찔렀을 때엔 그 목과 함께 호로도 가지고 돌아와 무훈의 증거로 삼는 것이 요령이었다.

출처 : 사사마 요시히코, 일본무도사전, 柏書房(TOKYO), 2003.

아케치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래 망토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구들을 잡고 노확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화살방어용이 아니고 방한방습용에 간지용 장비였습니다 화살이 막아졌다곤 해도 본래 화살막이용이었다기 보다는 하고다니다보니 우연히 흘러드는 유시가 막아졌다 정도로 보는게 맞을 것입니다. 안경쓰고 다니다 보니 우연히 날아드는 돌멩이를 안경이 막아줬다 정도?

My*********:

끊는 타이밍이 막장드라마 수준 ㅋㅋㅋ


ba********:

tv에 나오는 모든 프로 중에서 국방tv 전쟁사가 젤 잼나네용. 홍홍홍 +_+


Ch***********:

기자님" 쓰키야 마도노"가 아니고
"쓰키야마 도노"


Ni*****:

전국시대 너무 재밌네요.


이정*:
박사님 : 이러는게 어떨까요
기자님 : 받들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Hi**********:
전국시대 일본무사들의 갑옷이 화려하고 기괴할 정도로 개성이 강했던 이유는 봉건시대 주종관계는 철밥통 공무원이 아니라 프리랜서 고용관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무사들은 고용주인 영주에게 자신을 홍보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는데 당시 무사들이 자신을 홍보하고 증명할 상황은 전투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용이 눈에 잘 띄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투구가 기괴할 정도로 화려하고 갑옷도 울긋불긋한 실을 밖으로 내어 눈에 잘 띄게 했습니다. 전투에서 자신의 싸움이 영주가 직접 보든 주변인들이 목격해 영주의 귀에 들어가게 하든 어쨌든 널리 알려야 했으니까요. 설인귀가 가난을 못견딘 마누라의 바가지에 고당전쟁에 자원해 나갔을때 당태종 눈에 띄려고 흰 옷을 입고 활약해 전투를 지켜보던 당태종의 눈에 들어 출세하게 되었는데 이런 효과를 일본 무사들도 노린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무사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 가마쿠라시대부터 두드러졌는데 토전사여몽연합군 일본원정편에서 나왔던 내용중에 전투 전 무사들이 자기소개하는 부분이 나왔는데 이것을 나노리라고 합니다. 가마쿠라시대 전투는 무사들의 개별전투로 전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투 시작전 무사가 말잡이 종자와 뛰어나가 자신의 이름과 전공 집안 연혁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의 부당함을 역설해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자신의 이름을 아군들에게 널리 알리고 고용주의 눈에도 띄려 했습니다. 첫번째 나노리를 이치방나노리라고 하며 영예로 여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나노리 후 무사들끼리의 단기접전을 시작하며 가마쿠라사대 무사들은 동북면 에미시들의 전술을 받아들여 마상사격을 해 승부를 가렸습니다. 문제는 이딴 장황한 나노리는 여몽연합군 입장엣선 무슨 개짓거리냐 싶었을테고 무사들이 여몽연합군 앞에 나서 멋들어지게 나노리를 시작하면 여몽연합군은 폭탄이나 화살로 보답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나노리 풍습은 점차 사라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일 장도는 유지되는데 어쨌든 이런 불합리하고 의미없어보이는 일이 생기고 유지되었던 건 봉건시대가 가진 사회적 구조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 아퀴부스나 머스킷이 개머리판이 있는데 반해 동아시아의 조총이 개머리판이 없는 이유는 당시 일본에 들어온 조총이 전투용 아퀴버스가 아니라 개머리판 없는 사냥용 아퀴버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격자세도 견착이 아닌 뺨을 대는 사격자세가 되었습니다. 국내 사극에서 이런 고증 없이 개머리판없는 조총 가지고 견착자세로 사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백영*:
트럼프가 하는게 바로 전국시대의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이네. 누구 말을 듣는게 아니라 본인의 판단에 따라서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게 딱이네.

Ta****************:
요즘 이거 보는 맛으로 삽니다. 길게 해주세요.

ha********:
1578년 봄 겐신의 죽음이 반 노부나가 연합의 마지막 기회를 무산시켰다 봅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가쓰요리가 패하고 물러났지만, 여전히 가이, 시나노를 지배하고 있었고, 동쪽의 호조 가문도 건재했죠. 이 시점에서 장군 요시아키는 이번에는 겐신에게 노부나가 토벌을 의뢰하는데, 이시야마 혼간사에서 저항하고 있던 혼간지 켄뇨도 호응합니다. 그동안 겐신의 영지에서는 잇키의 봉기가 많았는데, 혼간사의 지시를 받고 협력하게 되면서 아군이 된거죠. 1577년 겐신은 테도리가와 전투에서 시바타 가쓰이에, 하시바 히데요시(훗날 도요토리 히데요시)등을 크게 격파합니다. 명목상 사령관이었던 가쓰이에의 명령에 히데요시가 불복하는 사태가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노부나가는 혼간사와 서쪽의 모리가문을, 장남 노부타다는 미노에서 다케다를 견제 중이라 여기에 참가할수 없었죠. 겐신은 일단 겨울이 지나서 다시 재정비하여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교토 상경을 준비하는데, 이듬해 3월 출진을 며칠 남겨둔 시점에서 뒷간에서 일을 보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사망하게 됩니다. 노부나가는 겐신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제 일본은 나의 것이구나"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겐신이 사망하자, 후계자 다툼이 일어나는데, 여기서 가쓰요리는 다시 한번 큰 실수를 합니다. 겐신에게는 두명의 양자가 있었는데 카게토라는 호조가 출신의 양자였고, 가쓰요리는 아내가 호조 가문에서 시집왔으므로 당연히 카게토라를 후계자로 지원했으면 우에스기, 다케다, 호조 3가문이 인척으로 연결되니까 오다도 섣불리 건드릴수없었는데, 다른 양자인 카게가쓰가 시나노 북부 영지를 다케다에 양도하는 조건에 손을 들어줍니다. 이로 인해 호조 가문이 다케다 가문과의 동맹에서 떨어집니다. 결국 1582년 오다는 도쿠가와, 호조와 함께 다케다에 총공격을 가하고 다케다는 멸망합니다.

시시*******:
중국 2차 국공내전도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유럽전선 못지않은 국민당450만 vs 중공군 100만명의 대전투입니다.결전인 서봉전투 즉 회해전투도요.

공*:

개인적으로 토크멘터리 전쟁사는 EBS에서도 반영해야된다 이리 재미있는 토크프로그램 정말 오랜만이다 진짜 유용하고 재미있는거 같다


1*:
국방TV의 몇 안되는 효자컨텐츠....정말 재미있게 잘 봅니다. 본방사수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

개*:
이제 겨우 2라운드임ㅋㅋㅋ 12부까지 쭉쭉 갑시다ㅎㅎ

In***************:
전국시대도 중동전쟁 처럼 길게해주세요!

Ny******:
제가 지금에야 댓글을 봤는데 화승총과 갑옷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을 봤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언급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에 관련된 내용이 사실 다음회와 다다음회에 나오는데요. 먼저 화승총 개머리판에 관한 얘기입니다. 여기에 관해 달아주신 댓글 정말 잘 봤습니다.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다만 무조건 견착식은 군용이고 면착식은 사냥용이라는 구분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16세기 중반부터 사격클럽 있었는데요. 그 사격클럽 멤버들은 상당수는 사냥꾼 출신이거나 사냥을 즐기는 귀족들이었습니다. 사격클럽 멤버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승총은 견착식 개머리판이 있는 화승총 이었죠. 물론 나중에 화승총을 이용한 사냥이 활성화 되면서 면착식 화승총이 많이 사냥에 쓰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16세기의 사격클럽에서 주로 쓰이는 화승총은 견착식 화승총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이들은 클럽에서 정밀도를 요하는 사격경기는 물론 클럽 대항 사냥에서도 이 총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사냥용 총이 무조건 면착식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갑옷입니다. 제가 도세이구소쿠 얘기를 하면서 서양의 플레이트 갑옷에 견줄만 하다고 한 뜻은 당시 동아시아에 존재하던 갑옷 중에 도세이구소쿠가 서양식 플레이트와 비교 대상이 란 뜻이었습니다. 서양식 플레이트갑옷과 난보우구소쿠 얘기는 세키가하라 전투편에서 간략하게나마 다시 언급 됩니다. 여기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보충 설명을 하시고 힐란 할 뜻은 없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씀 하시는 와중에 어불성설이란 표현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한 것인지 한번 깊이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번 조총편에서 방점을 찍은 내용은 초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초석에 관한 내용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초석이 당시 대단히 중요한 국가 전략물자임을 인식했고, 이로인해 영국 등 서양 강국들이 각축전을 벌였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어느 시청자께서 초석에 관한 내용을 인상깊게 시청하셨다는 언급을 해 주셔서 감사 할 따름 입니다.

 


 

국방TV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댓글들을 모아 요약형, 시간대형, 인기순 등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좋은 영상 혹은 채널인데, 너무 길어서 아쉬웠던 분들은 유튜브 채널이나 동영상 링크를 남겨주시면 블로그 포스팅해드리겠습니다.

 


 

반응형
해당 링크를 통해 제품 구매가 이루어진 경우, 쿠팡 파트너스 활동 일환으로 인해 일정 수수료가 블로거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