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47부 삼국시대3 - 나·당전쟁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47부 삼국시대3 - 나·당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b_-6KSTzGxw
 

 

재생시간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47부 삼국시대3 - 나·당전쟁

B:

26:18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것


TH************:
35:40 소련군의 기량향상을 보고 독일군이 한 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들도 할 수 있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루루**:
1:48 기자님 히틀러 ㅋㅋㅋㅋㅋ 빵터짐

에스**:
24:33 김유신은 죽은후 신라에서 왕으로 추대를 해줍니다. 왕족이 아니면서 죽어서 왕으로 추대된 경우가 한국 역사상 최초이죠. 육진병법 꼭 기억해야 할거 같네요. 2:56 22:08 32:24 36:14 47:53

 


 

인기순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47부 삼국시대3 - 나·당전쟁

이정*:
민족주의 사관을 벗은 이런식의 프로그램이 보고싶었습니다
국방TV에 고마운건 처음이네요

최정*: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통일을 이루고 결국 당을 몰아낸 과정을 잘 풀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Ju********:

임용한 교수님 해석에 시각전환이 생깁니다.


Yo*****:
기벌포 해전: 신라가 당나라 20만 해군을 격파하고 승리, 매소성 전투: 신라가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승리, 결과: 신라가 당나라 세력 축출, 신라까나 연변족 화교들이 외면하는 역사적 사실

sk****:
부흥하는 나라에는 부흥의 이유가 있고, 쇠퇴하는 나라에는 쇠퇴의 이유가 있는듯.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국민들의 정신력이나 단합심이 있을까. 완전 분열되어있는 것 같고. 사회지도층에는 과연 김유신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Wh******:

당나라가 외세래ㅋㅋ 당나라나 백제나 고구려나 신라입장에서 다 외세인데 ㅋㅋ


Do*:

왈왈!


Je*********: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해주세요!

Gl******:

초등학교때부터 교과서속에 그려진 고구려를 동경하고 살았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안좋게 생각을 했었는데
임용한 박사님의 통일신라의 통일에 대한 의의(삼국이 당과 싸우며 화합되고 통합되어 하나가된) 되었다는게
비록 영토는 축소되었으나 고려왕조 조선왕조를 지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었네요
짧았지만 삼국사에 대해 다뤄주셔서 정 말 감사합니다


sh******:
신라가 정말 힘없고 무능했던나라이고. 끌어들인 당나라의 힘만으로 삼국을 통일했을 정도라면.
나당 전쟁에서 저렇게 길게 갈수도. 또한 승리할수도 없었으며. 특히 통일신라의 존속기간이 200년을 넘길수가 없었을거다.
중국의 왕조들이 짧게는 60여년. 길어봤자 200년 남짓한데. 우리민족들이 새운 거의 모든 국가들은 기본 200년에서 500년이였으며.
이기간은 세계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짧은 기간들이 아닌데. 우린 우리 스스로를 너무 폄하하는경향이 있죠.

물론 지리적 이점과 민족적 특성이 있지만. 그만큼 많은 외세와 침략을 겪으면서도 그긴 시간들을 존속했고
또 이렇게 우리민족이 한반도에서 유지될수 있었던건 그만큼의 국력이 되였다는 증거겠죠.
조선을 그렇게 폄하하지만. 그단시 100년의 전쟁으로 동아시아를 넘어선 세계최강의 육군인 일본군을 상대로 이긴것등등...
일제의 역사왜곡과 민족성 말살정책의 영향때문에 우리가 우리 역사를 너무 폄하하는건 좀 문제다 싶습니다.

이경*:

제가 전 회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나폴레옹'에 대해서는 한 번도 못 들어 본 것 같은데요..좀 의외인 것 같습니다..


신라*:

역사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전체를 봐라. 신라는 반도에 존재했던 국가중 가장 많은 전쟁을 했으며 가장 많은 승리를 한 나라다. 만약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당의 힘을 빌릴 이유는 없다. 554년 관산성 전투, 602년 아막성전투에서 상대가 연합군을 편성했어도 신라에게 몰살당한 사실로서 신라가 이들의 연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지.

헌데 김춘추 태종 무열 매금 태왕은 백제를 멸하고 그 영토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즉, 침략전쟁이다. 문제는 침략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중국의 존재지. 당이 신라의 영토확장, 즉, 백제 점령을 용인하겠느냐라는 것이다. 당이 이걸 용인하지 않으면 신라는 애써 뺏은 백제영토를 다시 뱉어낼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거지.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당으로부터 백제점령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김춘추가 그 허락을 득한 이후에 신라는 지키는 전쟁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하여 고구려 백제에 빼앗긴 영토를 모조리 되찾고 그 영토를 확장을 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 당은 병사 한명 지원하지 않았다. 이 사실만으로 신라가 자신들의 실체, 즉, 손발톱과 어금니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


KB****:
신라더러 외세 끌여들였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백제가 5-6세기 내내 왜(일본)와 연합해서 신라를 주구장창 침략했던건 왜 욕 안할까? 가야나 백제나 일본을 끌여들여서 신라를 계속 침략하고 넘봤기 때문에 신라의 지도층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신라의 백성들을 위해 외교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최선을 다한것 뿐이다.
김춘추 딸인 신라 공주가 백제의 대야성 침략으로 죽고 신라가 위태롭자 김춘추가 고구려에 먼저 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고 왜나라는 백제와 편먹고 있었으니 당연히 거부, 결국 남은건 당나라 밖에 없었고 나당연합이 탄생하게 된거지.
그당시에 같은 부여 계열이었던 고구려와 백제도 서로 대단히 원한이 깊었는데(광개토대왕릉비에 백제를 백잔이라고 비하하고 고국원왕이 백제 손에 죽고 백제 개로왕이 중국의 북위에 국서 보내서 백제 공주한테 북위의 궁을 청소시켜도 좋으니까 고구려 공격해달라고 비는 등)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랑 연합한게 그렇게 아니꼬운데 정작 당나라에 끌려갔다가 당나라 괴뢰 수반이 되어서 자기손으로 백제부흥군을 토벌하러온 백제 태자 부여융은 왜 안까임?ㅋㅋ
나당연합 성사되고나서 백제는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이 중국출신 백제귀족 예식진한테 배신당해서 결국 항복했고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 내분으로 내부에서부터 이미 휘청휘청하고 있었고 결국 지들 손으로 항복함. 이랬는데 신라더러 "왜 민족을 배반했냐 왜 영토를 다 뺏겼냐 빼애액!!!"대는게 말도 안되는 소리지ㅋ 현대의 '민족' 기준으로 수천년 전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고 당시에 만주땅을 그렇게 영양가 있는 땅으로 고대인들이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의문. 지도도 없는 시절이고 애초에 신라가 만주땅을 수복할 이유도 없었고 당시 신라에까지 야욕을 드러내는 당나라 견제하기 위해서 신라에서 고구려 부흥운동 지원해주기도 했고.
삼국통일한 문무왕은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당전쟁 때 포기하지 않고 싸워서 결국 당나라를 한반도 밖으로 몰아냈는데. 비록 토번이 강성해져서 당나라가 토번, 신라 양쪽을 다 상대했어야 했다는 덕을 봤다 하더라도 신라가 포기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7년동안 당나라와 싸운건 팩트고 실제로 성공했지. 문무왕 유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당시 신라 고위층이 신라백성에 대한 애민정신이 훌륭했다는건 팩트고, 실제로 김유신, 관창,반굴, 김원술, 찬덕 등 신라 화랑이랑 장군, 성주들 전부 귀족계층, 지도자계층임에도 대다수가 전장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숨을 버릴 정도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뛰어났고 그게 신라가 삼국통일하게 된 한 역량이기도 한 것.

Ma******:
아... 임용환 박사님 감사합니다. 다시 보니 또 새로운 걸 느끼네요 ^^

ki***:

찰리채플린 뿜었습니다ㅋㄱㅋㅋㅋ


LE***: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야 될 만큰 좋네요. 현재 교과서는 많이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

Ho********:

역시 역사는 사실로 배워야 국뽕이 안되는군요. 여지껏 배신자 신라가 외세와 더불어 비열한 통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토크멘터리 역사를 보면서 고구려는 내부모순문제가 있었고 백제는 봉건적인 국가라서 한계를 가졌으며 신라는 노블리스오블리쥬를 갖춘 나라였으므로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다는것을 배우네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더 노블리스오블리쥬를 행했으면 합니다.


찌찌**:
신라라는 변방의 매우 작은 국가가 당시 세계초강대국 당을 막아내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한민족의 단결력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함*:

교과서와 실제가 다른 역사라니
진짜로 다시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윤성*:

나폴레옹 해주세요 제발!


Fo**********:

당나라왕들도 선비족출신!!
고구려•유민들 생각하면 맘이 넘 아픔 ㅠㅠ


안산***********:
나당전쟁의 결과로 통일신라가 되면서 한민족이란 개념이 처음 생긴건데...,
저도 삼국 중에 고구려를 제일 좋아하지만,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전엔 신라입장에선 고구려,백제도 외세,
당나라도 외세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죠.

금앞**:

오늘 죄송한데 임용한선생님 단추가 괴로워해요 ㅎㅎ(그래도 참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du****:

흉노의 후손인 신라가 역시 흉노/선비족 후손의 당나라 황실과 연합해서 삼국을 통일했지만 부여의 후손인 고구려는 말갈족과 연합해 만주에 발해를 세우고 역시 부여의 후손인 백제의 기득권층 왕족과 귀족들은 신라와의 융합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일본섬으로 탈출해서 일본열도에서 신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게 됩니다. 백제의 후손인 일본의 천황가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역대백제왕들의 제사를 지내며 한반도의 고토수복과 신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고 합니다.

나당전쟁이 있었기는 하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후 동북아의 외교구도는 신라는 흉노라인이었던 당나라와 화친을 해서 교류를 하는 반면 북쪽의 발해와 바다건너 왜하고는 주로 대립을 하는 관계였습니다. 한편 같은 부여라인의 발해와 왜는 서로 친밀한 외교관계를 갖았다고 하지요.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리즘과 대립관계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통일신라와 융합을 거부하고 일본섬으로 탈출한 백제귀족과 유민세력의 한반도 신라에 대한 대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도래인들이 주류를 이룬 일본열도에서 도래인들도 백제계와 신라계로 나뉜다고 합니다. 백제계는 일본천황을 중심으로 해서 관서지방에 주로 모였고 신라계는 한동안 일본열도에서 마이너리티 였다가 관동지방에 모여서 세력을 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백제계가 정치적으로 득세해서 천황중심으로 뭉치면 꼭 한반도에 대한 해꼬질이 일어났습니다. 임진왜란과 19세기 경술국치등은 일본열도에서 백제계가 득세를 할 때였습니다. 반대로 신라계 자손들이 득세를 할 경우 일본은 한반도와 화친을 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쿠카와막부의 에도시대동안 조선과 일본은 화친을 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도쿠가와막부가 천황을 중심으로 뭉친 메이지구테타 세력에게 무너지면서 일본에는 정한론이 대두되었죠.

신라(흉노)와 백제(부여)와의 라이벌리즘과 대립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대립과 라이벌리즘으로 두고 두고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


 


 

국방TV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댓글들을 모아 요약형, 시간대형, 인기순 등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좋은 영상 혹은 채널인데, 너무 길어서 아쉬웠던 분들은 유튜브 채널이나 동영상 링크를 남겨주시면 블로그 포스팅해드리겠습니다.

 


 

반응형
해당 링크를 통해 제품 구매가 이루어진 경우, 쿠팡 파트너스 활동 일환으로 인해 일정 수수료가 블로거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