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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84부 동아시아 전쟁사 남한산성 수성전I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84부 동아시아 전쟁사 남한산성 수성전I
https://www.youtube.com/watch?v=K9L3BmimrFM

 


 

재생시간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84부 동아시아 전쟁사 남한산성 수성전I

이*:

11:42 박사님 : "역사라는게 진정한 교훈을 뽑아내려고 하는 거지, 분노하자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분노를 해버리니까, 진정한 교훈을 못 뽑아내는 거예요."
->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게 아니다. 화를 내느라 교훈을 끄집어 낼 줄 모르게 되는 게 문제다.
??? : 화를 내는 나더러 뭐라고 하는 걸 보니, 너는 분개하는 애국심을 막으려는 매국노구나?


Mo*********:

44:30 에 허준님이 한국인은 원거리전투 선호한다고 말하는거 공감되는게
월탱해도 서로 자주포하려고 해서 한국섭이 유독 자주포 비율 높았고
서든이나 카스도 보면 꼭 스나할려고 서로 아귀다툼함ㅋㅋㅋ
외국도 스나질 좋아하는 게이머들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돌격류 선호하는 비중이 작지않은데 한국은 유독 너도나도 스나충


에스**:
임진왜란 30년 후 정묘호란 그로부터 9년 후 병자호란, 김육이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장시켜서 조선의 수명을 더 늘렸는데 결국 일제강점기,분노만 하지말고 침착하게 생각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뭘 안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하네요. 15:05 18:10 23:36 30:23 37:57 45:03

호호*:

5:15 노비 불쌍하네 ㅜㅜ 이름조차 흔남이야


유태*:

21:20 부터 입으신 옷들이 다 바뀜... ㅎㅎㅎ


계란**:

10:40 양대 엠씨 빙의 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성*:
18:17 윤아나 귀염 >??><

솔:

31:30 뭐에요 저 머그컵?? 토전사 굿즈임?? 팔아주시면 안될까요???ㅠㅠㅠㅠ


하고**:
21:40 어라 옷이 바뀜 ㅋㅋ

임경*:
18:13 삽..!

 


 

인기순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84부 동아시아 전쟁사 남한산성 수성전I

김경*:
오늘의 교훈: 평소에 예습, 복습, 모의연습을 철저히 잘하자.

김민*: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토전사 볼때마다 졸라 재밌다. 박사님 설명이 너무 재미남


일보**:
쌍령전투에는 그 유명한 모하당 김충선 장군도 참전하셨죠. 모하당 문집에서 열심히 싸웠으나 화약고가 폭발해서 졌다고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지요 ㅜㅜ 그리고 병자호란에서 많은 충신열사들이 싸우시다 돌아가셨는데 패한전쟁이라 너무 많은 충신열사분들이 묻히는게 아쉽네요;; 알쓴신잡에도 나왔지만 최진립장군처럼 노구를 이끌고 싸우시다가 전사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말이죠(그 집에서는 같이 싸우다 죽은 노비셋도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최진립이 몹시 늙어 전장에 나가기는 마땅치 않다 하여 다른 장수로 대신하니, 최진립은 곧 몸단속하고 활과 칼을 차고 말을 타고 나서며 말하기를, ‘내가 늙어 전장에 적합하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늙은 자는 유독 한번 죽어 나라에 보답할 수 없단 말인가?’ "
최진립 [崔震立] 국역 국조인물고

Te*************:
19세기 세계 최고의 화승총 ㅋㅋㅋ 이건 마치... 2차 대전 전차와 전투기를 풀업해서 미국에게 이기겠노라고 큰소리치는 북쪽 돼지 일가의 모습과 유사. 무다구치 렌야 비웃을 일이 아님 ㅋㅋㅋ

프로**:

노비는 때려도 되고 생산물 착취해도 되고 노비끼리 강제로 관계 맺게 해놓고 노비로 만들어 거래도 되고 심지어 죽여도 되는 양반들 사유재산인 노비가 / 도대체 통념적인 노예란 단어와 노비가 다른게 뭔가? 조선은 자국민 30%이상 노예화 시킨나라다. 노예들이 생산하는 것을 착취하고 양반 나으리님들 공자왈 맹자왈하게 하는 유교 탈레반 조선... ㅠ


청천**:
참 어이없는 훈련부족의 조선군

Ha******:

토전사 진행4분과 스텝 여러분들 올 한해도 건강, 행운 듬뿍 차고 넘치시고 토전사 팬 님들도 멋찐 한해가 되시길!😀👍


구국******:

옛날이나 현대나 아무리 훈련잘된정예배테랑 군대도 군수물자없으면 끝인데, 조선은 훈련도 군수믈자도 취약하니 졌지


조재*:

진짜 교훈을 찾으랬는데 다 분노만 하고있네. 병자호란 끝났을때도 이렇게 욕만했을거아녀.


PO**************:

19세기 세계 최고의 화승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j****:

방어를 위해서만 군대를 유지한다면 보여주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전쟁이었습니다. 방어 목적이기에 우리 땅을 지키자는 의식적인 고취 이외에는 사실 상 다 부족하죠.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조선의 문제점은 주변국에 비해 너무 평화로웠던 것 정도일 겁니다.
조선 초기에 벌였던 국방 정책들을 제외한다면, 조선의 기본 상태는 무장 도적떼들을 막는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가 일어나더라도 외부 세력과의 정면대결 같은 전쟁다운 전쟁을 할 일은 없고 야인과 왜구 토벌이 주요 군공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필요성도 적어지고, 실전을 거친 지휘관들을 발탁해서 대규모 군대 동원을한다거나 할 일이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백년이고 이백년이 흐르면 어떤 나라이든지 다 약화됩니다.
약해질 수 밖에 없죠. 가진 예산이 많다고 전쟁 잘하는 것도 아니니 훌륭한 군대 시스템을 참고할만한 곳이 근처에 일본 밖에 없었는데 임진왜란 때문에 그건 도입하기 싫고...
그리고 당시의 어떤 나라이든지 개방성과 안정성 둘 중 하나를 위해 희생하는 게 있습니다. 보통 외국의 위협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을 감수하고 내부에 불안 세력이 크게 놔둘 것이냐 아니면 외부의 위협을 정리하고 안정성을 회복할 것이냐. 다르게 표현하면 개방적인 교류와 폐쇄성이란 그런 것입니다. 최대한 개방적이면서 최고로 안정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동아시아는 그런 점에서 오래 전에 정해진 영역 같은게 있어서 유럽보다 국경과 민족의식이 더 확고했던 편이며, 한반도의 경우 평화로울 때는 태평성대에 취해 느슨해지고 외부의 격변기, 격동기에 그 대가를 치러왔습니다. 언제 다시 거대한 전쟁 같은 격변기가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 두 번의 호란동안 있었던 조선의 사례를 보아서 우리의 문제점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야 하는 게 맞는 결론인 겁니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누구 탓이네, 뭐를 못해서 망했으니까 조선은 쓰레기다하고 마녀사냥하면서 화내는 것은 조상님들이 하던 마녀사냥을 이어서하는 거나 마찬가지며 기록도 부실히하고 다 까먹어버려서 대가를 치르는 병자호란의 조선과 같이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 거죠.


JM*:
홍이포 앞에 총통들은 이미 구식 무기임. 그리고 조총은 아직 연사가 너무 복잡하고 오래걸리는 발전이 덜 된 무기고.... 그에 비해 서구식 대포는 역시 전장의 여왕답다...

고독****:

이 당시 청나라 군대 수준은 진짜 미쳤음. 빙판을 빠른 속도로 가기 위해 스케이트 신발까지 신음


민들*:

우리 민족은 언제나 윗대가리(?)들이 문제임.
유전자는 나쁘지 않은대 으이구
하지만, 자학은 안좋다고 봅니다
국력이 되면 만주도 점령하고 떵떵거리고 살았겠죠~~


fo**********:
교수님이 시뮬이 안되어 있다 하신게 와닿는게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어찌할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던게
생각이 드네요

공구**:

인죳 빙딱이 왕이되니 씁슬하구나


BA******:
저때도 언제나 정치인들이 문제고 고생이나 개죽음은 노비나 평민 서민이 다하죠..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인들 자국 실리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지키기나 명분이나 내세우는것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Hi**********:

조선조총병들이 사격통제에 느슨했던 이유는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의 조총전술을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기병의 집단돌격전술이 없던 일본은 유럽에서처럼 칼같은 사격통제와 빠른 재장전을 통한 집단사격 대신 비교적 느슨한 통제와 개별조준사격을 기본전술로 했는데 기병돌격 걱정이 없고 조총병이 상대해야 할 적은 도보로 이동하는 느린 보병이기 때문에 장거리에서 느긋하게 조준사격하면서 긴 시간 동안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수시로 돌격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기병들 투성이라 이들을 막기 위해 칼같이 사격통제하고 재장전속도를 줄여 집단사격하는 형태로 전술이 발전합니다.
조선은 조총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고 전술도 일본에게 배워 일본식의 느슨하게 사격통제하는 개별조준사격이 기본적 조총전술이 되었고 따라서 사격개시선도 유럽에 비해서 길어지게 됩니다.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50미터니 하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집단탄막사격을 하던 유럽기준이고 강선이 없는 활강총으로도 연습하면 충분히 백미터 이상 거리에서 쏘아맞출 수 있습니다. 가이드도 없는 활도 연습하면 백미터 밖에서 쏘아맞추면서 총은 왜 안되겠습니까? 이는 일본의 영주들이 휘하 무사들의 사격실력을 검증했던 대회기록과 나선정벌에서 조선조총병을 모집했던 기준을 보면 증명됩니다. 애초에 일본에서 아퀴부스를 철포라고 부르던걸 명에서는 조총이라고 부른 이유가 나는 새도 쏘아맞춘다고 조총이라고 명명했고 그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 조총에 대한 당시 조선인의 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병을 장기로 하는 청과의 전투에서 이 전술은 약점을 보이게 되는데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첩인 김화전투는 유럽식의 근거리 일제사격을 전술로 썼다는 점에서 기병을 상대로 유럽식 전술과 일본식 전술의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양시*:

전쟁공로로 은전을 지급하는 방식 또한 고려했군요.
하지만 화폐경제가 형성되지 못한 시기였기에 끝내 좌절되었군요.
그 당시 상평통보가 있었다면 좀 더 수월히 전쟁에 임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음으로 면천을 포상으로 하여 노비층들의 적극적인 참전을 이끌려 했는데요.

여전히 신분질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오히려 남 일인양 흐트러지게끔 만든 셈이 되버렸네요.
임진왜란 시기에는 공명첩을 통한 방식을 이용했는데 그 때는 그 정도의 절실함은 없었던 걸까요?

더 나아가 차라리 관직을 주지 대과에 응시는 불가하게 만든 사대부들의 입장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과거제의 대상에서 배제시킨다는 입장을 철저히 고수하여, 신분제 고착에 기여하게 했다는게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게 됐어요.

그래도 쓰디쓴 역사 또한 도외시해서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발전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제작진, 출연진 여러분 좋은 강의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교훈삼아야 할 역사를 상기시켜주시길 간청드리겠습니다.


Ji*****:

1443년 6월 5일 Chosun Kingdom Record 1443 June 5th
August 3, 2011 at 10:45 PM

Chosun Kingdom Record 1443 June 5th

Pyung An Do's 1000 chief Pak Chun Bu were looking for new land but return without anything

Wu Chan Sung, Hwang Bo In, Kim Jong Su call him to discuss new land  and give a cloth to Chun Bu and send him to looking for new land again 

sent message to Pyung An Do and Ham Kil Do province governer

" draft 19 pioneer and send with Chun Bu as recognance party

let them go up to the mountain and look for new land

If they find new land draw the map and let them report it"

당초에 평안도

자성 천호(慈城千戶) 박춘부(朴春富)가 새 땅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왔었는데, 우찬성

황보인·예조 판서 김종서를 불러서 찾을 계책을

의논하고서, 춘부에게 의복 한 벌을 하사하여 다시 파견하였다. 드디어 평안도와 함길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새 땅을 찾을 사람으로서 모름지기 장용(壯勇)하고

근실(勤實)한 자 19인을 가려서 모두 호인(胡人)의 의관(衣冠)으로 차리고 활과 화살과

도검(刀劍)을 차고서 마른 양식을 많이 준비하게 하여, 박춘부로 하여금 거느리고 가도록 하고,

밤낮으로 잠적(潛跡)하여 들어갔다가 돌아오게 하되, 산에 올라가 바라보도록 하여서, 만약 새 땅을 발견하거던 사방 산모양을 은밀하게 그려서

종적을 드러내지 말고 돌아와서 그 고을에 보고하게 하고, 빨리 계달하도록 하라. ”




땅끝까지 간거임 새땅을 못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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