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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기 동영상 : [KBS역사저널 그날]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KBS역사저널 그날]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https://www.youtube.com/watch?v=LSwxJ2WlRvo

 


 

요약 댓글 : [KBS역사저널 그날]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예작******:

전쟁은 혼자서는 승리 할 수 없고 멋진 팀원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알게되었습니다.

1.문인이자 무인 ㅡ녹두 만호 정운
:이순신의 고민을 결단하게 하는 인물
2.파녹선의 문제점을 개선한 거북선의 아이디어 뱅크ㅡ나대용
3.수 십년 실전 경험,조력자ㅡ정길
4.처음과 죽는 날까지 함께 벤치마킹ㅡ송희립

다른 지역,다른 환경,다른 생각과 경험자들은 하나의 팀이 되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구를 무찔렀네!


이석*:

1.녹도만호 정운鄭運
2.거북선만든 나대용羅大用
3.이순신의 스승 백전노장 충정병사 정걸丁傑
4.군관 송희립宋希立


푸르*: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다ㅡ 若無湖南是無國家))

임진왜란때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 (서울출신)장군과 4인의 핵심참모

1.정걸 장군 (고흥출신)ㅡ충무공과 동급의 훌륭한 장군이며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백전노장으로 남해안 바닷길을 훤히 꿰뚫고 있었음.

2.정운 장군 (영암출신)ㅡ충무공의 최측근이며 최고의 맹장.

3.송희립 장군 (고흥출신)ㅡ의병을 모아 충무공 휘하에 들어감.

4.나대용 장군 (나주출신)ㅡ거북선을 만든 당사자.

* 충무공과 함께한 장수와 병사 대부분이 호남출신임.

 

 

재생시간 댓글 : [KBS역사저널 그날]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따개*:
0:26군함이다 개간지 ㅠ

 


 

인기순 댓글 : [KBS역사저널 그날] KBS 역사추적 – 최강 수군의 비밀, 이순신의 사람들

이래*:
한국사람끼리 서로 험담하지 말고 서로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모든것을 극복해 나갑니다

아회***:
역시 영웅은 곁에 훌륭한 참모가 있었기에 가능한거다.

중앙**:

역시조선시대저런명장수들과李純臣장군그리고휘하수군들감사합니다
편히영면하소서~


하루**:

정걸의 후손이었다니. 자랑스럽네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정걸장군은 황충같이 노익장을 보여주셨네요.


이상*:

토왜 박멸!


천:
충무공 이순신 장군 께서
마지막 노량 해전 에서~
전사 한걸로 위장하고-
은둔 생활을 하셨 다는*
의견이 있는데 실제 현실성 있는 주장 인가요?
여러분들 답변 주세요☆
전라도 광주 김동령 드림

wi**********:
이런 분들때문에 아직 우리가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te*******:

이순신장군님의 승리는 일본을 식민지로만들수있다는것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우수***: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다라 말 한 이유를 알게해 주네요

li*******:
감동의 해전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남해랑 고흥등 가 보고 싶습니다

이게**:
우리 민족의 영웅, 영원히 잊지않겠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님! -해군 642기

유인*:
명장 뒤에는 항상 이렇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조력자 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말고, 우리도 지금의 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조력자 들이 됩시다! 다른 의미지만 십시일반! 내 조그만 보탬이 큰강을 이루어 힘이 됩니다! 극일하고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이 되자구요!😈😈😈😈😈😈

신:
사람을 능력에 따라서 잘 쓰는것도 지휘관 역량임. 원균은 이순신이 갈고 닦아놓은 실전경험도 있고 함대도 가장 강력한 함대를 가지고도 제데로 이겨보지도 못하고 칠천량에서 패전할때보면 왜군은 겨우 100명의 손실이였음. 지휘관 하나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게 실제 전쟁의 현실임.

김진*:

충무공의 전쟁 정신은
살리고자 하는 정신 입니다


DY*:
맞습니다. 영웅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옆에 뛰어난 부관과 군사들, 그리고 이름없는 민초들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이들 부장들 역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들이며 영웅이었습니다.

An*********:

눈물이 나도록 마음이 숙연해지며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게 됩니다.


mo*******:
이런건 꼭 영어와 일어로 자막이 있어야 합니다

주니**:
전쟁중에도 장수목을치는 나라 과거나 현재나 똑같은 현상

이순***:

고려엔 최영 이성계가있다면 조선은 이순신 권율 김시민이죠


살인**:

왜구는 조선시대때나 지금이나 늘 한반도를 침략을하고 있습니다 1909년도 침략을했죠 왜구가 침략하는 주기는 100~150년 주기로 한반도를 침략 했습니다
이젠 경제침략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왜구를 찬양하고 있는 토착왜구들이 있는 한 한반도엔 또 다시 왜구의 침략이 발생할것입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제일 무서운 법이죠


순*:
우리 영웅님들
가슴 깊이 고개숙여
감사를 드립니당

그러*:
이분들의 업적이 있었기에 이순신이 100전 100승 아배 보고있냐

국뽕***:
우리민족의 자랑 충무공 여해 이순신장군님 늘존경합니다

st********:

우리가 충무공 이순신을 성웅 즉 성서로운 영웅이라부르는것은, 나라를 구하기위해 자기목숨을 바침이 마치 종교적 순교자 못지않게 성서로움이 있기에 그리 불러 마땅한 것입니다. 당시 어리석은 군주 선조에도 다행이 이순신장군과 정운, 정걸, 나대용, 송희립 장군같은 용장이 있었기에 나라를 구할수 있었던 거였군요.. 새로 많이 배우고 가며 새삼 당시 우리선조님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함을 느낌니다.. 일본불매운동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혐한의 뿌리의식을 가진 현 아베정권과 일본 우익들떄문에 멀쩡히 개발할수 있는 7광구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우리 힘을 길러고 경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제주도 기반의 기동함대를 더강화 및 무장시키고 필요시 핵잠수함까지 건조및 무장시킨후 , 대한민국단독으로 7광구 개발 할수 있어야 합니다. 외교로 안되면 군사력인 힘의 기반이 있을때 일본놈들은 꼼짝할수 없습니다.. 일본놈들은 강자에게는 늘 찍소리 못했거든요.. 7광구 개발을 일본의도대로 미개발로 가면 10년뒤에 일본에 편입될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근 차근 기동전단을 중무장 시켜,, 5년이내 힘의 기반하에 우리 에너지자원을 독립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PI***********:
우리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탐망군관 임중형 할아버지..저는 그 분의 24세손이구요..
저희 할아버지는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부하들과 같이 목숨을 걸고 적진 깊숙히 들어가 일본군 동태를 파악하여 이순신 장군에게 직접 보고하고 작전회의에 참석해서 이순신장군이 참모들과 작전을 세울시 같이 참여하여 적의 동태를 같은 참모들에게 말하고
같이 전투에 참여 하셔서 훗날 혁혁한 전과를
인정 받어 나주 목사직에 오르신 분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에 기록이 되있으시고
장군께서 편두통으로 고생하실때 바로 옆에서 보필하신 이순신 장군의 휘하 장수 이십니다..
탐망군관이라 함은 현재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상급부대에 적의 동태를 보고하는 수색대를 말합니다..전쟁이 일어날시 옛날이나..현대전이나 가장 중요한 부대 입니다..
https://m.blog.naver.com/dlarlvy/220321300216
여기 검색해서 보시면 자세히 나옵니다..
ㅋㅋㅋ
기록에 임준영(맏길임씨)는 정탐병..
저희 할아버지는 임중형(수풀림) 탐망군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두성씨가 서로다르지만
같이 명량해전에 참전하신게 키포인트 입니다..

RI*****:
H

● 주인 도망간 진주성 사수한 호남대장부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고종후는 글을 잘하고 그 아버지의 풍도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우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고는 죽기로 맹세하고 종군하였다.

그는 남에게 준 서신에서, "어버이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살겠는가. 다만 분명하게 한 번 죽기를 요할 뿐이다." 하였다...

성이 장차 포위되려 할 때 김천일은 그의 온가족이 모두 죽게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밖에 나가기를 권하였으나 그는 따르지 않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12



● 주인 도망간 진주성 사수한 호남대장부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김천일은...이항에 사사(師事)하여 학문으로 명성이 있었으며...그러나 체질이 허약해 병이 많았는데, 군대 내에서 세월을 지내다 보니 고생으로 몸이 야위어 옷의 무게도 이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나 지기(志氣)가 견정(堅貞)하고,
충성이 분개하였다

그래서 뭇사람들로 하여금 적과 대치하여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06



● 주인 도망간 진주성 사수한 호남대장부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최경회는 자는 선우로 능성에 살며 문과에 올랐는데...전란 초에 그는 집에서 거상(居喪) 중이었는데, 고경명을 이어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전 임실 현감 임계영도 군사를 일으켰다.
최경회는 좌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임계영은 우도의 의병을 거느렸다.

호남이 이미 안정되자 두 장수는 모두 달려가 영남을 구원하였다...진주성이 함락되자...등과 함께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11



● 주인 도망간 진주성 사수한 호남대장부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장윤은 순천 사람으로 무과에 올랐다...그러다가 진주성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서예원이 목사로 있으면서 항시 탈출하려고만 하므로 인심이 분개하였다.

김천일이 계문(啓聞)하여 장윤으로 목사의 임무를 섭행케 하니, 성안이 비로소 지킬 뜻을 견고히 하였다.
그가 지킨 땅은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는데, 장윤이 죽자, 군사들이 믿을 바가 없으므로 성이 함락되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10



● 주인 도망간 진주성 사수한 호남대장부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양산숙...나주에 살며 성혼을 사사하였다...그가 돌아왔을 때에는 적이 이미 성을 핍박하고 있었는데...양산숙은 말하기를,

"위태로운 처지에서 구차하게 죽음을 모면하고 주장(主將)으로 하여금 혼자만 죽음에 빠지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하고, 남강을 통해 성에 들어가니, 군사들이 모두 놀랐다.

성이 함락됨에 미쳐 양산숙은 헤엄을 잘 쳤으므로 그의 힘으로 충분히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끝내 김천일과 함께 죽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13



● 호남대장부
'명장의 풍도가 있는 자로는 모두가 황진을 추중하여 으뜸'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황진은 고상(故相) 황희의 5대손으로서 용맹 건장하고 활을 잘 쏘았으며 엄중하고 충신하여 기절(氣節)이 남보다 뛰어났다...

왜란이 있는 이후로 모든 장수 가운데 행군에 법도가 있고 사졸에 솔선하여 옛날 명장의 풍도가 있는 자로는 모두가 황진을 추중하여 으뜸으로 꼽았는데, 재주를 다 발휘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조야(朝野)에서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07



● "여기를 우리들이 죽을 장소로 합시다."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다. 
김천일·최경회 등이 전사하였다.

...29일 동문의 성이 비로 인해 무너지자 적의 무리가 개미떼처럼 기어올랐다. 

종인이 친병(親兵)과 더불어 활과 화살은 놓아두고 칼과 창을 가지고 육박전을 벌여 죽인 적의 시체가 구릉처럼 쌓이니 적이 이에 물러갔다. 

적이 창의사가 지키는 서쪽과 북쪽 성문은 병력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군을 모아 힘을 다해 공격해 올가가니, 창의군이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였다. 

적이 드디어 성에 올라와 병기를 휘두르니,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이 흩어져 촉석루로 들어갔는데, 서예원은 먼저 달아나 숨어버렸다.

김천일이 최경회·고종후 등과 청당(聽堂)에 나란히 앉아서 말하기를,

"여기를 우리들이 죽을 장소로 합시다."

하고는 술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술을 지니고 있던 자도 이미 달아난 뒤였다. 

이에 불을 지르도록 명하고는 스스로 타 죽으려 하였는데 적이 바로 촉석루에 올라오자, 김천일이 그 아들 김상건 및 최경회·고종후·양산숙 등과 함께 북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종인은 이곳저곳에서 싸우다가 남강에 이르렀는데, 양팔로 두 명의 적을 끼고는 크게 소리치기를,

"김해 부사 이종인이 여기에서 죽는다."

하며, 강에 몸을 던졌다. 

...성이 일단 함락되자 적이 대대적으로 도륙을 자행하였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06



● '영남의 전공으로는 김준민이 가장 으뜸이었다'

[선조수정실록 27권, 선조 26년 6월 1일 1593년] 

김준민은 용력(勇力)으로 이름이 났다.
이종인과 함께 북변을 수비하면서 힘껏 싸워 이름이 드러났으나 문벌이 낮은 관계로 일찍 현달하지 못하였다.

영남의 전공으로는 김준민이 가장 으뜸이었다.
형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09

 

 

KBS역사저널 그날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댓글들을 모아 요약형, 시간대형, 인기순 등으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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