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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기 동영상 : [KBS역사저널 그날] 역사추적 – 광개토대왕 청동호우 왜 경주에 묻혔나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KBS역사저널 그날] 역사추적 – 광개토대왕 청동호우 왜 경주에 묻혔나

https://www.youtube.com/watch?v=Ohe3EaKFb2c

 

 

재생시간 댓글 : [KBS역사저널 그날] 역사추적 – 광개토대왕 청동호우 왜 경주에 묻혔나

따따*:

10:59 터더욱


bi********:

4:30 #표시는 삼국시대 부터 사용 햇구나


승봉**:
47:19

 

 

인기순 댓글 : [KBS역사저널 그날] 역사추적 – 광개토대왕 청동호우 왜 경주에 묻혔나

RE**********:
요즘 이거 보는데 재밌다. 며칠에 1 올리네.. ㅜㅜ

Bo***********:

속국으로 봐도 됩니다. 정복에는 중국식 정복 즉 상대국을 완전히 없애고 자기네 땅으로 포함시키는 정복이 있고, 다른 하나는 몽고식 정복 즉 상대 나라를 정복하되 항복을 하면 그 나라 왕국은 남겨 두고 조공을 바치면 정복한 것으로 보는 것이죠.


Hu********:

청동메우


백린*: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청과 조선의 관계같았겠지.

영토라는게 게임같이 점령하면 먹는게 아니니까 합병이 안 된거지. 조선이 4군 6진을 조선땅으로 만드는데 150년이 걸렸다. 그만큼 새로운 영토를 지배한다는게 어려우니 속국으로 한거지.


무등****:

역사에 만약이란 없긴하지만 만약에 400년에 고구려가 신라를 안도와줬으면..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했을텐데


Sa**********:
고구려 남정과 가야의 패망이 연관이 있어보이고 가야는 일본으로 패해 도망가지 않았나!!

만*:
조선 한민족의 같은 뿌리 신라에서 티벳까지..

박영*:

제일힘없는신라가외세끌여들여통일,짤못된통일.


JK**:

고구려의 영토란게 침략해서 만든것인데...신라가 고구려를 망하게 한것도 당연한 수순입니다.
고구려도 요동에서 한반도로 침략해서 내려옴...


부시*:

역사를 너무 오늘날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분이 너무 많다...


ij********:
속국이었던 나라가 종전의 대국의 압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하죠.
몽골족의 '원'과 여진족의 '청'이 중국대륙의 패자가 되기 이전과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하면 이 정도야 뭐... ㅎㅎ

eu****: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책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메모하는것도 좋아하는 민족이다
기록해 두지 않는 민족이 아닐수 없지
아마도 그 지하실엔
우리 시초 환인부터 환웅 아드님단군세대부터 아마도 족보책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 역사 연대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중간이 없다
뭔가 빠진 느낌이 있다
그걸 태초인 환인(환국)때부터 연대기를 넣어야 한다
일본은 알고 있다 이모든것을...
환국때부터를조사해야지

푸른**:
신라 역사의 시작은 모호 했었다..고구려나 백제 같은 연관성도 없었다..거기에 한반도 동북쪽에 살던 말갈을 집어 넣으면 신라의 시작이 상당 부분 풀린다는 논문을 본적이 있다..그렇다면 지금의 아무르강 유역 까지 뻗어서 살던 말갈족이란 도대체 누굴까..엄밀히 말해선 우리민족를 이룬 한부분이 맞다..그래서 신라는 한민족 역사로 편입되는 것이다.고조선이나 고구려는 단일 민족으로 이뤄진 사회가 아니었다.

이신*:

댓글 예상했긴했는데 역시나...


An**:
언제부터 왜곡투성이에 날조된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국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난걸까? 심각하구나.

oh*****:

군사 동맹국이지


LU*******:

호...우?


김종*:
모지리들아 한 나라의 흥망성쇄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고구려는 연개소문까지가 정점이었고 이후 그아들들의 내분으로 스스로 망국의 길로 들어갔다.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한반도 한민족의 개념은 통일신라로 부터 시작된 개념이다.

안정*:

훈족을중국식흉노표현은대단히잘못된표현이다!!사대주의발상을즉시석고대죄하라!!중국이고조선을동이족(동쪽의오랑캐)몽골을몽고(몽매한민족) 표현과같다!!


Ra**********:
초기 신라는 동네북 맞음 백제,고구려, 심져 지보다 약한
가야한테도 쳐맞음.
근데 역사를 보면 정말 반전이 많음

러샤가 한때 폴란드한테 쳐맞고 다녓다는거 암?
지금 세계를 제패한 게르만비롯 북유럽이 로마, 그리스때는
지금의 아프리카급 취급받았던거 암?
미국은 잘아니 패쓰..
영국역사에서 쵝오의 후회
"아~ 범죄자들를 영국에 놔두고 우리가 본진을 호주로 옮겼어야했는데"

Hy**********:
발굴 처음 배우고 연습해보자 하면서 마당을 팠는데 유물이 우수수 ㅋ

TH***:
난 궁금한게 우리가 졸라 소설이라는 일본서기에 왜 수탉을 제거하라는 신라 상부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적혀 있냐는거다.

JS*:

강성했던 고구려가 통일 못한이유
삼한땅 한반도는 산악지형이 많아 요충지,성이 많음. 수당 대군도
고구려의 산악 요충지,성 때문에
전쟁패배했는데 백제나 신라도
많은 성이 있었고 나제동맹으로
고구려 견제함.
고구려는 북방,중국국경 남쪽까지
인구나 국력이 부족했음.
비록 신라가 강성해질때 고구려 백제 연합으로 고립을 벗어나고자 당나라와 손잡고 통일하였지만
만약, 연개소문 같은 강경파들이 몰락하고 온건파들이 중국과 친화정책을 우선하고 삼한 통일했다면.....


나무**:
어디보니 백제에 한참 밀렸던 고구려가 고담덕이 실권을 쥐면서 밑으로 남하할때 백제를 비롯한 신라까지 사실상 복속시키고 고구려의 지배영역에 포함시키며 삼국에 1차통합 시기로 고구려의 전성기가 시작됫단 주장도 있음..이때 시기에 많은 신라 유민들이 왜열도로 이주했고 동시에 신라를 괴롭히던 강성했던 금관가야를 비롯한 여러 부족들이 거의 괘멸되고 역시 그 가야의 유민들도 열도로 피신햇단 주장과 이것까지 흥미로운 부분인듯ㅋ 동북아 전체의 대전쟁으로 유민들의 이주까지 촉발시킨 대변혁의 시기엿단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주장인듯..

ys*:
한상권 해설사님 고대 시기(우리 민족의 4국시기/가야국들 포함)) 동 아시아의 위계 질서의 룰이 중화 주의에 쩔은 중원의 역대 왕조들이 황제라 칭하며 주변 동 서 남 북 의 이민족을 북적,남만,서흉,동이 라 호칭 하며 오랑케 들이라 부르고 황제국인 중원의 자국이 천하 동 서 남 북에 왕들이 다스리는 이민족 들을 중원에 조공을 받치는 제후국(속국)으로 취급한 암묵적인 위계 질서가 존제 했을 시기 이므로 고구려는 이에 중원 왕조가 만든 위계질서 속에 굴하지 않고 동북아의 패자로써 천손의 후예라는 자체 천하 관을 가지고 동북아를 지배했죠, 그러므로 고구려는 천손 사상(고구려의 건국자인 추모성왕은 자신이 <<천자>>라고 했듯이 자체 <<천하 관>>을 가지고 있었음,호태왕 비문에 기록)에 입각해 세상을 다스리는 왕, 이 왕 들을 다스리는 왕 이라 하여 ,,태왕,,이라는 천하관을 갔고 제국을 다스린 거죠, 이렇듯 동아시아 의 질서라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고구려와 중원 왕조들은 사실 여러 문제로 패권을 다투었지만 그 이면에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두 태양이 자존심의 대결 ,즉 천자의 후예인 태왕 과 황제들이 자존심의 대결을 했다고 평 해도 무리는 아닌 거죠, 이렇듯 고구려를,, 태왕,,이 아닌 일개 왕,이나 대왕,으로 호칭하는 것은 역사를 논하는 논객으로써 옳지 않죠~

고구****:

고구려문자가 대단하다.고구려문자가 조선시대 김정희가 연구한거 같다.김정희서체서 호태왕문자와 유사한필체를 볼수있다.김정희가 조선시대때 고서나 문화재서 고구려문자를 연구한거로본다.고구려호태왕문자 서체가 대단하지,자연스러우면서 품격있고 호태왕께서 이도여치로 통치했는데 서체는 그런거를 가만해 비문을 기록했다.지금 채널서 역사를 제대로 기술해야지.광개토태왕이라해야지,선조대 임금들이 태왕인데 간신사학자들이 역사를 바로기술안한다.태왕은 만왕의 왕이고 왕은 일국의 왕이고,고구려는 대국으로 많은제후를 두었고,북경유주자사고구려태수로 북경은 고구려영토인데 간신사학자들 역사지도를 축소시키고 있다.북경은 고구려영토고,고구려천문관측지가 산시성산동성서 관측했다는 과학적증거,산동성까지 고구려영토였다는사실.천문관측지가 몽골바이칼동쪽앞에서 관측되는데 북부여고구려영토라는것이다.역사는 사학자들에 의해 변조 조작될수도 있지만
과학은 변치않지.호태왕시기,왜구와전투가 많은데 신라국지원 백제가야국 왜연합군 정벌때는 큰전쟁이었고 가야국정벌과 지금 대마도가 임나로 가장타당한역사로 고구려군이 임나치고 큐슈로 일본왜구정벌하러 큐슈10국을 정벌하고 오사카로 들어가 왜국항복받고 일본에 고구려태수를 두고 고구려군이 철군했다가 최근 우리학자들 주장이고 이는 호태왕비문의 지워진부분을 연구해야하고,중한족역사에서 일본왜국사신을 보면 고구려군이 일본왜국오사카지역으로 들어가 일본지배층항복받고 조공바치는역사로 본다.고구려국위용볼때 주변소국들을 제후로 했는데 왜국도 예외는 아니고 조공관련역사는 구체적 전쟁으로 일본으로 들어가 전쟁하고 항복받고 조공바치게하는거로 호태왕시기에 일본왜국정벌이 시작됐는거같다.호태왕시기 신라국지원은 큰전쟁이었고 기타여러전투서 왜구와전투가 있는데,지금 왜구가 월주백제 중본토동남부지역서도 있었고,백제국이 산동요서백제가 있었는데,고구려군에 밀려 월주백제로 이동했는데,월주쪽에 왜구가 있었다는게 최근 역사고 그러면 고구려군이 산동성서 양자강쪽 백제를 공격하며 왜구와도 전투를 했다는것이고 고구려호태왕시기때 산동성보다 확장된영토가 고구려영토였다는것이다.서안평은 상식적으로 고구려최서쪽전방으로 북경보다 서남쪽에 있어야한다.또한 서안평과 요동은 같이 있어야하고 고구려시대요동땅은 황하동북쪽이라는것이다.호태왕시기에 국내성이 수도인데 유리태왕때 초기졸본성서 국내성인데 초기졸본성위치가 북경쪽으로 연구되는데,졸본부여 서부여가 있었는데 백제국이 서부여를 정통계승했는데 백제국초기천문관측지가 북경지역으로 나타난다.그래서 졸본부여서부여가 하북성쪽에 있었다는 것이고 초기졸본성은 북경지역이라는거.국내성또한 역사는 자금성3배라 하는데 유리태왕때 장거리천도를 했을까가 의문으로 북경서 가까운 곳이나 요서북쪽정도로본다.호태왕시기기록에 태왕순시하평양인데,국내성서 하평양 순시했다는거로 평양성은 하북성아래에 있다는 역사로 추정할수있다.수도평양성이 하북성남부 산시성중간에 위치했다는 최근연구이다.호태왕기록서 태왕순시하평양이 맞는기록인데,장수태왕때 평양성천도를 국내성서 남쪽 산시성평양성으로 천도했는데,장수태왕때 북위와의 관계나 북연 후연관계가 있었으니 고구려국이 적어도 하북성을 영토로하고 있었고 고구려국이 북위와후연을 두국을 경계로했고 북위와후연은 남북으로 경계했다는거로본다.북위는 낙양일대고 후연은 북위북동쪽에 위치하여 내몽골과 동몽골에 걸처있었는거로보고 고구려국은 황하동북쪽 산시성하북성요서만주연해주 한성쪽이라는거.고구려후기때도 호태왕때 영토를 좀내주었다해도 황하동북쪽요동땅이 고구려영토고 영양태왕은 수나라선제공격을 황하를 지나 하남성지역쪽으로 진격했다로본다.수나라때 조양지역은 하남성쪽조양으로 해석할수있고 지금 요녕성조양은 근대옮긴지명이다.그러니 영양태왕이 선제공격지역이 지금 조양지역이 아니다는것이고,요하가 고구려시대 요수가 아니다는것이다.거란영주는 초기에 북경근처 내몽골쪽이었는거로,거란은 고구려시대 고구려국의 변방제후였다.설인귀가 거란출신인데 설인귀출신지가 산시성근처이다,고구려시대때 안시성전투에서 설인귀가 등장하는데,안시성이 산시성근처에 있다는것이다.거란은 산시성변두리내몽골북쪽에 이르는 부족으로 있었고,고구려변방제후였다.거란은 북방민족사고 고구려국하고 연관되고 돌궐또한 고구려동맹이고 선비또한 동몽골쪽에서 고구려와 동맹했고.강이식장군과 을지문덕장군은 황하근처서 수나라군 30만을 격퇴했다는거.요택은 황하쪽 저지대늪지대로 보고.고구려국이 호태왕 장수태왕때 산시성산동성을 영토로했다는게 타당한역사로본다.고구려역사를 다시보면,돌궐과 수시로 동맹했고,인도와교류활발했고 초원길따라
위구르 고창국 티벳 인도 사마르칸트까지 교류가 활발히 있었다는걸 알수있다.그래서 사마르칸트벽화서 고구려국사신그림이 있다.


wl**:

고구려 백제 신라 민족은 한반도에 살던 각기 다른 민족이었다.
인종도 민족도 쓰는 글자도 달랐다. 크게 삼국으로 분류됬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소수민족이 한반도에 살았다.
부여 마한 여주 가야 등등....엄청 많은 민족이 한반도 안에서 살고있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쟁으로 몰락한 민족이 있었고 번성한 민족이 있었다.
신라는 통일신라시대에 가장 번성했으며 백제는 멸망당했지.
신라인으로 살거나 싫으면 한반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서 살아야했다.
결국 역사는 이긴사람들이 써 내려간 족보이다. 패배하면 이름조차 남지않지.
내 글을 보면 아마 이해가 빠를것이다. 왜냐면 지금 한국역사는 다 구라치는것이기 때문에...
사실 한민족의 조상을 홍익인간 단군이라고 하지만 단군은 동이족이다. 오랑캐라는 뜻이지.
한반도에서 힘이 없이 밀려나가면 그것은 오랑캐 이민족이 되는것이다.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2천년동안 한민족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이미 2천년전에 아시아에서 하늘에 제단 제사를 올리는 엄청난 민족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 그런 높은 신앙의식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 없었다.
강한 왕권을 과시하려고 하인을 산채로 매장시키는 순장도 있었다.
산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강했다는 증거지.
역사를 배웠으면 고인돌을 알것이다. 그런데 모양이 다 다르지?
이미 그때만 해도 다른민족이라는 뜻이야.
그때도 그렇게 많은 고인돌이 있었는데 전쟁을 안했겠냐?
죽느냐 사느냐.. 이 한반도를 차지하면 조상의 선택받은 민족이 되는것였겠지.
스톤핸지와 비슷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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