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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96부 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III

 

이번에는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리뷰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유튜브 볼때 좋은 내용의 영상이더라도 영상이 너무 길면 건너뛰기 하거나, 안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를 볼때 스크롤해서 댓글 먼저 보시는 분들 많으신가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절약을 위해서 유튜브 인기 동영상의 중요 내용이나 요약, 공감 댓글 등을 먼저 확인해보고 유튜브를 시청해보는건 어떨까요?
(추천)인기 동영상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96부 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III
https://www.youtube.com/watch?v=nEklNHuMu7E
 

 

재생시간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96부 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III

Su**********:
13:23 이거 유럽분쟁을.... ㅋㅋㅋ 34:23 이탈리아와 프랑스 모두에게 위험한 샤를? ㅋㅋㅋ

Su**********:

37:13 아르콜(Arcole)이란 지역을 통과하던 도중 2,000여 명의 오스트리아군 병력이 지키는 다리를 통과해야 했고, 프랑스군은 다리를 쉽게 돌파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야 했죠. 이때 나폴레옹이 삼색기를 들고 최일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해 다리를 돌파했다는 건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추가한 영웅담이며 실제로는 강둑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다가 오스트리아군의 총격으로 죽을 뻔 했다고 하네요.... 이 전투에서 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부상당했는데 부상당한 장교들 중 훗날 프랑스의 원수가 되는 여단장 장 란도 있는데 부상 투혼을 발휘한 장 란이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을 구원해낸 것은 유명하죠. 이후 3일 동안 돌파 시도와 후퇴를 반복하다가 오스트리아군이 겁을 먹고 후퇴해서 전투가 종료됩니다. 사심이지만 뮈라 이야기는 없지만 다음편에서 장 란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Ju*********:

41:26 다음 이야기가 다음화로 가버렸네요....


응니*****:

34:26 샤를세환ㅋㅋㅋㅋㅋ


이영*:
26:30 갑자기 아웃사이더가 생각나는 건 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솔*:
41:24 그런데 여기서 이제 중요한 거시~~~~~~(빰!빰! 빰!빰!) 다!음!이!야!기!
절묘 합니다~~~

th******:

8:05 값지X 갚지O


에스**:

나폴레옹 전쟁 이야기인데 루브르 박물관의 이탈리아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네요. ㅋㅋㅋ 9:46 24:35 35:22


B:
29:40 다른 장군들: ㅋㅋ.. ㅎㅎ... ㅈㅅ!

le*****:
25:45 배틀필드에 나오는 맵같네

 

 

인기순 댓글 :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 196부 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III

수퍼******:

일주일 2회 안됩니까 히히


정우*:

드디어 올라왔군요 잘 보겠습니다


김세*:

우회기동 각개격파!


우카*:
나폴레옹 편 진짜 재미있다... ㅋㅋㅋㅋㅋ

또우***:

선 좋아요 서 뎻글 후 감상


Do************:
불금을 더 빛나게해주는 교양 한사발
고맙습니다 네분과 제작진분들 모두들

Th*******:
나폴레옹편 해주셔서 감사한마음으로 이거 보는낙으로 매주 기다립니다~~~~~~~~~ 잘볼게요~~~~~~~~~~ 이다음엔 베트남전 다뤄주세요~~~~~~~~~~

HE***********: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스페인 내전 다뤄 주세요.

ho*****:
코로나 때문에 뉴스보는거도 지치는데
그나마 일주일에 보는 프로 중 하나

Sa****************:

바쁘셔서 그렇겠지만 한주한주 기다림이 너무 오래걸립니다 ㅠㅠ
이런 프로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Ha*********:
역시 역사는 진실하다

ms*:

28:20 합스부르크 왕가 카를(카일) 대공은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2세의 동생입니다. 훗날 아스페른 에슬링 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고 나폴레옹의 절친 장 란마저 전사시키죠. 그 뒤 바그람 전투에서 패전하고 그 책임으로 병권에서 완전히 손 땝니다. 나폴레옹도 인정한 명장이고 카를 대공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메테르니히는 언행이 불일치하고 스타디온은 멍청하고 벨가르드는 주제파악을 못한다. 황제 프란츠는 사람은 좋으나 마지막에 말한 사람의 말을 따르며 오직 카를 대공만이 나와 말이 통하는데 지금은 관직을 내려놓았다."


Te*************:

천안함 사건, 연평해전, 서해교전 등 언젠가 북한의 대남 도발사에 대해서도 정리해주시면 좋을듯 하네요.
그리고 6.25 전쟁 당시 중국이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 등에 대해서도 정리하면 될 듯 합니다.
'전쟁의 역사'이니, 한번은 해야죠.


Be**********: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진짜 다양한 방면에서 톡톡 튀네요.
적당한 예술품만 골라서 약탈을 하다니 ㅋㅋㅋㅋㅋ


세잡*:
나폴레옹은 볼때마다 뭐 저런 사람 다 있나 싶음 ㅎㄷㄷ

My**:
국방TV에서 훈장 만들어서 이 네명에게 즉각 수여 하기를 요망! 충성!

유승*: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이 채널만큼 다양하게 해석하는 채널은 첨입니다..


양시*:

나폴레옹의 현실적 면모를 여러모로 알 수 있게 되었어요.
- 계몽정신을 지닌 채 출사를 했으나, 점령지 봉기에 대해선 매정하게 대한 점
- 혁명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로비스트적 행보를 감수한 점

'공화제가 수립되는 과정은 언제나 평화롭다.'는 낭만주의적 환상이 와장창 무너지는 경험이었어요.
역사적 현실성이 갖춰지는 듯해 유익하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 집단적 폭력성에 경기를 떨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본국에선 영웅찬가를 들었을지 모르겠으나, 점령지에선 침략자라 지탄받지 않았을까요?
'인류사적 광기는 여기서도 별 수 없구나.'란 생각에 허무주의마저 올라왔어요.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 진출을 위해 로비스트 역할까지 감행했다는 걸 듣고 차라리 꿈이길 바라기까지 했어요.
'공화국을 숭고한 정신으로 타협없이 이룬 건 분명 아닐 수도 있다.'는 처절한 회의감에 혼란의 연속이었어요.

나폴레옹의 그늘을 강렬히 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냉혈한이라 평해도 과언이 아니란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도 역사를 냉철한 시선에서 볼 수 있어 뜻깊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강의로 만날 수 있긴 기원할께요.


Bn****:
시간상 몇가지 생략한 부분이 있어서


제 1차 만토바 구원전의 순서

산악지형에서 대군이 한길로 갈 수가 없기에 가르다 호수를 뷔름저 본대와 카스다노비히의 우익부대로 두개의 군대로 나눠 내려옴 -> 이때까지 나폴레옹은 상황을 관망함 물론 정찰과 척후를 계속돌림 -> 카스다노비히의 오스트리아 우익 부대가 가르다 서쪽으로 내려오다가 나폴레옹의 부하 마세나의 전위부대와 접전 후 전위부대 깨짐 -> 오스트리아에선 옥스케이의 부대의 패배 후 후퇴소식이 들려옴 -> 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던 나폴레옹은 후방에서 노는게 아니라 카스다노비히의 군대기동을 유심히 보고있었음 -> 카스다노비히의 특유의 소심함과 신중함이 독이 되어버림 -> 나폴레옹이 보기엔 카스다노비히의 우익부대는 굉장히 꾸물대면서 내려오고 있었고 카스다노비히의 성향을 파악한 나폴레옹은 여기서 일종의 도박전술을 펼침 -> 만토바 포위를 풀고 오쥬로에겐 1만 1천병의 병력으로 뷔름저의 본대를 견제시키고 나머지 온병력을 데리고 카스다노비히의 부대의 진로였던 로나토 지역으로 이동함 -> 오쥬로의 1만 1천의 부대는 카스티글리오네라고 하는 지역으로 신속기동 후 뷔름저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함 -> 오쥬로의 부대와 뷔름저의 전위부대가 먼저 접전함 -> 오쥬로는 뷔름저의 전위부대를 털어버리고 예봉을 꺽어버림 -> 주변에서 행군하고 있던 뷔름저의 오스트리아 군대가 근처의 대포소리를 듣고 급히 전장으로 모이기 시작함 -> 겨우 1만 1천명 밖에 없었던 오쥬로 역시 사활을 걸음 온병력을 남김없이 전투에 투입함 -> 70평생 전장에서 굴러봤던 뷔름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음 그래서 내린 결론이 영상에서 처럼 오쥬로의 부대는 전위부대의 형식이며 뒤에 나폴레옹의 본대가 오는 걸거라 판단함 -> 공격을 중지시키고 군대를 조금 뒤로 물린 뒤 뷔름저는 방어준비에 하루정도를 할애함 -> 오쥬로의 부대는 기적적으로 승리했고 나폴레옹 본대 역시 그 하루 번 타이밍에 카스다노비히의 우익부대를 요리 중이였음 -> 가르다 호수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로나토지역은 산악지형이였기에 전장의 상황은 이곳저곳 구역별로 이뤄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의 2만명 카스다노비히의 1만 5천명 별로 차이도 없었기에 일진일퇴를 반복 중이였음 -> 데스파누아도 밀려나고 달레마뇽의 부대도 2번이나 패배하고 오스트리아 군대의 옥스케이 장군도 그 유명한 폭풍우 쥐노의 부대에게 밀려나는 등 (쥐노는 칼에 머리를 베이는 부상도 입음) 정말 일진일퇴를 벌임 -> 그 때 살로라는 지역에서 싸우고있던 카스다노비히의 귀로 로나토의 옥스케이의 부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어가고 신중하고 소심했던 이 양반은 남쪽으로 진격은 더이상 가망없으니 가르다 호수를 다시 올라가서 가르다 호수의 동쪽으로 내려와 뷔름저와 합류해버린다고 하고 올라가기 시작 -> 나폴레옹의 부대는 후퇴하는 카스다노비히의 후위부대에게 총탄세례를 퍼부어주고 미련없이 뷔름저를 상대하기 위해 카스티글리오네 지역으로 이동 -> 뷔름저의 2만 병력 앞에 나폴레옹과 오쥬로의 3만 군대가 집결 -> 마세나와 오쥬로가 공격을 들어갔지만 70평생 전장에서 굴렀던 이 노장 뷔름저는 이 두 장군의 펀치를 막아냄 -> 전투는 저녁즈음까지 이어졌고 결국엔 뷔름저가 후퇴명령을 내리고 만치오 강을 건너 티롤 지역으로 후퇴하기 시작 -> 나폴레옹의 군대는 기진맥진했고 추격을 포기.


여기까지가 오스트리아의 제 1차 만토바 구원작전이였고 뷔름저의 부관이였던 카스다노비히가 깨지는 설명이 시간관계상 생략이 들어가서 그런지 좀 순서가 뒤죽박죽이라고 해야할까나.. 그래서 한번 씨부려봄 참고로 저 가르다 호수는 천혜의 지형이라 지금도 이탈리아의 군사거점이라고 함

Bn****:
알빈치의 제 3차 만토바 구원전 전에 뷔름저의 제 2차 만토바 구원전을 생략 해서 씨부려봄


역전의 노장이였던 뷔름저가 당시까진 신예 나부랭이 나폴레옹에게 패했다는 소식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전해짐 ->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트리아의 전쟁위원회는 뷔름저를 질책했고 만토바를 재구원하라고 다시 군대를 편성해 내보냄 -> 카스다노비히의 쌩뻘짓으로 패배한 뷔름저는 패배하고 돌아온 그해 9월경 별로 내키지도 않는 구원전을 다시 떠남 -> 뷔름저는 말그대로 박박 긁어서 자기 명령하에 모을 수 있는 병력을 싹싹 긁어 떠남 약 4만명 -> 당시 뷔름저의 군대는 트렌토 지역에서 대기 중에 있었음 -> 다비도비치의 트렌토 수비대 2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2만명을 이끌고 가르다 호수의 동쪽 아디제 강변을 통과해 브렌타 강변으로 이동 후 거기서 남하하기 시작 (궁금하면 이탈리아 구글 지도를 찾아 보시오) 이러면 나폴레옹 군대를 마주치지 않고 만토바로 직행 할 수 있다고 생각 -> 뷔름저는 구시대 장군이였고 시민군대라는 새로운 군대를 장착한 신시대의 장군 나폴레옹은 뷔름저의 군대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고 총재정부로부터 북진해 모로방면의 모로 군대와 합류하라는 작전명령서가 하달 됨 -> 나폴레옹 역시 뷔름저가 했던 것처럼 군대를 둘로 나누어 가르다 호수를 올라감 -> 오스트리아 군대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쉽게 가르다 호수 북쪽에서 두 군대가 집결함 (오스트리아 군대와는 차원이 다른 기동력) -> 집결 한 두 부대는 합류 후 트렌토의 다비도비치의 군대를 사정없이 강타해버림 즉 본진을 털어버림 -> 깜짝 놀라 병력도 제대로 못추스리고 당한 다비도비치는 완패 당하고 그대로 티롤 지방으로 내빼버림 ->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된 뷔름저는 일단 작전대로 만토바로 직행하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뷔름저를 추격하기 시작 -> 뷔름저의 오스트리아 군대의 기동력은 프랑스군의 기동력에 비해 너무 느렸고 나흘 뒤 브렌타 강변의 바사노 지역에서 나폴레옹의 부대는 그대로 뷔름저의 후위부대를 후려갈겨버림 (제 1차 바사노 전투) -> 후위부대를 이끌고 있던 장군은 1차 만토바 구원전의 패배의 원인제공자였던 카스다노비히였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남은병력을 추스리고 동쪽으로 줄행랑 쳐버림 -> 퇴로가 끊긴 뷔름저는 오갈데 없어지고 그대로 만토바로 입성해 기나긴 수용생활?을 이어나감 -> 나폴레옹은 만토바의 수용생활을 하고 있던 무장한 수용소? 사람들인 뷔름저의 군대를 견제 할 수 밖에 없었고 함부로 군대를 기동시킬 수 없었음 -> 9월이 그렇게 지나가고 영상에 나왔 듯 10월경 전선의 중요한 방면인 모로방면에서 중대한 일이 벌어짐 당시 25살의 청년이였던 카를 대공의 오스트리아 군대가 모로의 프랑스군을 에머딩겐에서 좌초시키고 이로인해 모로 휘하의 프랑스군은 라인강을 건너 다시 후퇴하는 일이 벌어짐 기자님 말 처럼 가장 메이저전선인 중앙전선이 고속도로마냥 뚫려버린 꼴 -> 이로인해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방면군은 나가리 되었고 총재정부 입장에선 모로방면에 집중을 해야하니 이탈리아 전선은 아웃오브안중이 되어버림 크게 별다른 지원도 못 받았다고 ->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한숨돌리게 되고 제 3차 만토바 구원작전을 알빈치로 하여금 준비하기 시작함

이게 바로 제 2차 만토바 구원전에서 3차로 가는 순서임.

 

 

국방TV 인기 동영상에 대해서 댓글들을 모아 요약형, 시간대형, 인기순 등으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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